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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뜰안/poem4

물꽃 / 이재무 물꽃 / 이재무 비 오는 날 호수에 물꽃 핀다 수직으로 빗방울은 떨어져 수면에 동심원을 그린다 수평으로 잔잔히 퍼지는 물무늬 세모시처럼 가늘고 고운 저 아름다운 적막의 동그라미 속, 누대의 시간 흐른다 소란과 수다에 지쳐 두꺼워진 몸 가누고 싶다 그리하면 한지처럼 얇아져 녹아서 형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지은 죄가 많아 선한 것이 눈에 불편한 사람 물꽃은 뿌리 없으니 고통도 없을 것이다 졌다 피고 피었다 지는 경이 순간의 삼매경, 차마 어지러워서 땀에 전 작업복처럼 무거운 내 오후의 생 비틀거리며 흠뻑 젖는다 2021. 5. 19.
추억도 없는 길 / 박정대 추억도 없는 길 / 박정대 하늘은 신문의 사설처럼 어두워져 갔다 주점의 눈빛들이 빛나기 시작하고 구름은 저녁의 문턱에서 노을빛으로 취해갔다 바람은 한 떼의 행인들을 몰아 욕정의 문틈으로 쑤셔 넣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무수한 욕망으로의 이동이라고 그날 저녁의 이상한 공기가 나의 등 뒤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도 하지 술을 마시고 청춘을 탕진해도 온통 갈망으로 빛나는 가슴의 비밀, 거리 거리마다 사람들은 바람에 나부끼며 세월의 화석이 되어갔다 그리고 세월은 막무가내로 나의 기억을 흔든다 검은 표지의 책, 나는 세월을 너무 오래 들고 다녔다 여행자의 가방은 이제 너무 낡아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흠칫 놀라곤 하지만 세월에 점령당한 나의 기억을 찾으러 둥그런 태양의 둘레를 빙빙 돌며 저녁의 나는 이 낯설고.. 2021. 5. 19.
Pablo Neruda - Puedo escribir los versos mas tristes esta noche 파블로 네루다 (한글 해석) Tonight I can write the saddest lines by. Pablo Neruda Puedo escribir los versos mas tristes esta noche. Escribir, por ejemplo : ‘La noche esta estrellada,y tiritan, azules, los astros, a lo lejos’. El viento de la noche gira en el cielo y canta. Puedo escribir los versos mas tristes esta noche. Yo la quise, y a veces ella tambien me quiso. En las noches como esta la tuve entre mis brazos. La be.. 2021. 5. 19.
마음 한 철 by. 박준 마음 한 철 박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통영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2021. 5. 5.